독서 기간 : 240126~230209
*(주의)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읽었던 책들 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줄거리
주인공은 어린시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으며 우리의 존재는 우주적 관점에서 먼지와 같다.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살펴주는 신은 없다.'는 말을 듣고 오랜 기간 방황한다. 주인공은 우주가 근본적으로 혼돈스럽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잊기 위해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의 실수로 그와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와 다시 만나기 위한 의지를 다지며 살아가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20세기 초에 살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를 알게 되고, 그가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꺾이지 않고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주목하며 그의 발자취를 쫓아간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가 '우생학'을 지지하였으며 그로 인해 간접적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과거에 정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아 수용소에 갇혀 불임 수술을 당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삶을 보며 우리가 비록 우주적 관점에서는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을지라도, 각자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을 공부하는 일이 신이 이 세상에 내린 메시지를 해독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진화의 나무를 공부하면 하등한 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사다리를 알 수 있다고 여겼고, 인간이 하등한 특성(게으름, 나태함, 허둥댐 등)이 유전되도록 방치하면 언제라도 사다리의 아랫단계로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우생학을 지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사실 우생학의 논리는 굉장히 직관적인데.. 1. 이 세상에는 하등한 형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2. 인간 개개인이 갖고 있는 형질은 유전된다. 3. 하등한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낳으면 인류가 평균적으로 하향될 것이다. 4. 그러니 하등한 사람의 번식을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위 논리에는 맹점이 매우 많다. 하등하다는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 우리가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형질이 실제로 유전자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경험에 의해 얻어진 것인지 모른다는 점 등.. 하지만 논리적 맹점은 과학적으로 밝혀낼 부분이라 치더라도 우생학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4. 그러니 하등한 사람의 번식을 억제해야 한다'라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사회가 공공선(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지만)을 실현한다는 명목 아래 사람들의 자유를 억제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었을 것이다. 공공선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일이지만, 어느 선까지 개인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느냐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판단은 자주 틀린다. 지금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특성들이 특정 상황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다. 개개인은 우주적 관정에서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길어야 100년을 살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생명이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의 생명과 운명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평등하고, 개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소중하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가족이다. 하지만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전에 읽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이용한다. 자아도취는 무서운 것이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신도 없고 무엇도 중요한 것이 없는 세상에 던져져 살아가면서 우리는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을 운명인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떻게 그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이 그가 세상을 살아나간 방법이,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가치있는 것이 무엇일지 데이비드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읽어 나갔다. 결국엔.. 우리 개인은 누군가에게는 영웅이고,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모두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대학생 때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고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가치 있는 일은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 그것만큼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배운 것은 자아도취하지 말고 겸손하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라는 것 같다. 우리는 누구도 소중하지 않지만, 누구나 소중하니까.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 마이클 슈어 (1) | 2024.06.02 |
---|---|
행복의 기원 - 서은국 (2) | 2024.03.18 |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 2024.01.12 |
평균의 종말 - 토드 로즈 (0) | 2023.11.19 |
장사의 신 - 우노 다카시 (2) | 2023.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