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SalmonSushi 2024. 10. 13. 17:48

독서 기간 : 240910~1013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과학도서는 맞고 틀린 것이 있는 분야고, 새로운 지식이 계속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출판된 지 오래된 과학책은 되도록이면 읽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예전부터 읽기를 몇 번 시도했었는데, 글도 잘 안 읽히고 어려워서 매번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이번에도 읽기를 시도해 보면서 20% 까지만 읽어보고  더 읽든가 그만 읽든가 하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끝까지 읽게 되었다. 읽어본 소감은, 과연 유명한 책은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이 책 또한 내가 재밌게 읽은 유명한 다른 책들처럼 익숙한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이 총균쇠를 읽었을 때와 약간 비슷했던 것 같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느낌이 그랬다. 원래부터 진화론과 그것을 잘못 이해했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진화의 방향성과 유전자의 의도에 대한 착각 등..)에 대해서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진화론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 세상은 적합한 유전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진화와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생물의 신비함에 대해 다시 느꼈다. 과학을 하며 살았어도 꽤나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인상깊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몇 가지 적어본다.

 

 노화를 납득되게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 고등학생 즈음에 스스로 노화라는 것이 왜 있는지, 생명이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고민해 봐도 명쾌한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는데, 유전자는 자손을 낳았을 '때'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자식을 낳은 후에, 늙어서 죽음을 불러오는 노화 유전자가 발현되어 DNA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은 가능하다는 답이 매우 쉽게 납득되었다.

 

 게임이론을 통해 모두와 협력하는 '봉', 모두를 배신하는 '사기꾼', 처음에는 협력하지만, 상대방이 사기를 치면 이를 기억하고 협력하지 않는 '원한자' 각각이 사회를 이룰 때 어떤 평형상태에 도달하게 되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봉들끼리 있을 때는 좋은 사회가 형성되지만, 봉들만 있는 사회에 사기꾼이 침투하게 되면 사기꾼이 봉을 착취하면서 더 큰 이득을 누려 사기꾼이 사회에서 비중이 높아지게 되고, 봉과 사기꾼의 비율이 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역시 봉은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기꾼, 봉, 원한자가 함께 있는 경우에는 사기꾼이 훨씬 적은 수를 이루어 어떤 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추가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득점이 높은 협력, 배신 전략을 찾아본 결과 처음에 협력하는 '착한 전략'이 대부분 우위를 차지한다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사기꾼으로 사는 것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배신을 일삼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착한 사람들이 더 큰 이득을 얻게 된다는 실험 결과를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라도 착하게 사는 것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이 지금처럼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도 그런 평형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기꾼이 사회의 대부분을 점령한 사회도 평형을 이룰 수 있었는데, 무정부, 전쟁 상태가 되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생자와 숙주가 번식 방법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둘이 운명 공동체가 되어 기생자가 숙주의 생존과 번식을 돕는다는 부분도 재밌었다. 하지만, 기생자와 숙주의 번식 방법이 달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결국 기생자가 숙주의 양분을 뺏거나, 번식을 방해하는 등 자신의 번식을 위한 행동을 하거나 환경을 갖추도록 조종하게 된다. 둘이 번식 방법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 하나의 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는데, 그렇게 우리가 지금과 같이 수많은 세포와 함께 사는 거대한 개체가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도 그렇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저 행동은 유전자가 이런 걸 원해서 그런 거겠지..', '저런 행동을 일삼으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 힘들텐데..'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이 사고하는 방식을 꽤나 바꿔주었는데,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했지만, 재밌는 책이었다. 유명한 책은 다 이유가 있다.